[謹弔]

어디선가 굉장히 많이 볼 수 있으리라.


개인적으로, 또는 사회 전반적으로 노 前대통령에 대한 치적에 대한 평가는 상당히 엇갈리는 게 사실이다.
그 가운데 존재하는 쟁점은 분명 지배언론 - 이라고 쓴다고 해서 조중동임을 알아채지 못하는 사람은
그다지 없을 듯 - 에서 주야장천 역설하고 있던 이른바 '친북좌빨'론. 대북 지원에 있어 무한 퍼주기식
운영을 지속하고, 대미 관계를 얄팍한 '주권론'을 앞세워 악화시키는 데 성공, 이는 필연적으로 국가 안보의
저해를 야기하고, 그로 인해 국민들의 불안감을 증폭시키는 데 이바지했다.. 정도가 그네들의 주장일 듯 싶다.

여기서 속내를 따져본다면, 노 前대통령은 오히려 신자유주의의 절대적 신봉자였고, 국가 보안 체계에 상당한
관심을 갖고 있던 인물 - 이는 제2 롯데월드 건립을 둘러싼 현 정권의 행보와 비교해보면 명백해진다 - 로 봐도
무방할 듯 싶다. 단적인 예겠지만, 국내 최초 이지스함 프로젝트를 가동시킨 것도 그였고, 당 내외의 무수한 압박과
술렁이는 국민여론 속에서도 끝내 미 정부와의 FTA협약을 체결한 것도 그였으니.
(물론 여기서 나는 지난날 그분의 정책에 호불호식 의견을 전개할 용의는 없다.)

조금 더 깊은 심도에서의 비판을 가하는 측에서는 그분의 '포퓰리즘'성 발언과 정책에 주의를 집중해온 게 사실이다.
어쩌면 '서민대통령'이라는 이미지와 함께 시작해온 그분의 대통령 직함 내에서 전개되는 일들, 시행되는 정책들이
실제 서민층에 대한 심도깊은 이해가 따르지 않은 그것이었다란 한계 - 혹은 한계라 일컫는 주장 - 에서 비롯된
패착일 수도 있겠지. 그리고는, 세기의 유행어인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 가 등장하기 시작한다.

(개인적으로, 그분의 입이 n개라도 할 말없게 만드는 비정규직 양산에 의한 고용 불안정, 그리고 물가 불안정
등의 상황들은 어쩌면 그분 역시나 분배보다는 성장 일변도의 관점에서 경제를 해석한 신자유주의의 그늘을
제대로 보여준 단면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정계 은퇴 후 여러 의혹에 휩싸이며 각종 정/재계, 사법부의 목숨을 건 필사적 공격에 위태로운
시간을 보내던 끝에, 2009년 5월 23일 오전 9시경, 그분의 생에 있어 최초, 이자 최후의 불연속점이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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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그분을 그런 파국으로 몰아넣었는가?"에 대한 쟁점,
몰아넣게 된 범인도, 몰아갈 수 밖에 없던 원인도 우선은 따지고 싶지 않다.

다만, 물론 "모두의 삶은 죽음이라는 기제 앞에 동등하다" 는 말에는 동의 - 그렇다고 최근 조갑제씨가
언급한 비슷한 한마디에 담겨있는 함의,즉 다분히 악의적인 비난을 읽지 못한 것은 아니다 - 하겠지만
국민적 관심도와 상황 이후에 나타날 극도의 공황상태를 염두에 둘 때, 그분의 선택은 가히, 극단의 시대에
걸맞는 극단의 사고. 이 미쳐버린 세상을 선물받은 댓가에 대한 답례는 어떤 식으로 표현되는가.. 를
가장 극단적인 형태로 보여준 사고가 아닐까. 그렇더라도 지금의 상황은 그저 참혹하다.

대통령으로서를 배제한, 그저, 인간 본위의 삶 속에서 죽음이란 '극단의 공포'와 비슷한 의미를 갖는다.
스스로가 영위해왔던 생을 이어나가지 못하는 단 하나의 불연속discontinuous점이며, 그동안 행해왔던
모든 것들이 그대로 '끝나버리는' 시점의 시작이기도 하다. 이러한 가늠할 수 없는 관념적 공포는 ironic하게도 -
지금까지의 인류가 그래왔듯 - 극복의 대상으로 지금껏 실재하고 있다.
(여기서, 죽음 앞에 홀로 선 인간은 그 '죽음'의 실재를 인정하는 것부터 극복을 시작하는 니체 식의 근대철학과
'신'이라는 매개 하에 현세를 신 앞에 서기 위해 노력하는 시간으로 명명하며 '생'이란 가치를 폄하하는 것부터
죽음에 대한 '도피'를 시작하는 종교철학으로 나뉘겠지만, 지금 언급할 사항은 아닌 듯 싶다.)

이러한 깊은, 심연 속의 공포를 압도해버릴 수 있는 커다란 어둠이 존재하지 않는 이상, 어떤 누구도
스스로에게 끝이라는 명제를 직접 부여할 수는 없다. 하물며, 정계라는 어둠 속으로 이미 스스로를
던져넣은지 몇십년이나 지나버린, 그로 인해 수많은 좌절과 절망적인 상황 내에서도 어찌되었든
'생'을 유지하고 있던 前대통령이라는 존재라면, 최근들어 그분을 지배하고 있는 어둠이 얼마나
자신을 짓누르고 있던 것인가. 아마도 생각조차 할 수 없을 만큼의?

이 미쳐버린 세상을 선물받은 댓가로, 우리는 대체 어떠한 답례를 행할 수 있을까.


post script) 이 순간 가장 보고싶지 않은 것은, 슬픈 베르테르의 행렬과 함께
이성의 끈을 단체로 놓아버린 전체주의의 맹렬한 역습.

by 김준희씨 | 2009/05/24 17:09 | 문명 | 트랙백 | 덧글(0)

BATOO 스타리그 결승전

나름 충격적 접전의 다섯경기.
리버스 스윕과 이연희 동영상이라는 충격을 안겨준 이제동.
(결승에 가장 크게 공헌한 사람은 플레이어가 아닌,
이연희와 홍진호였다=ㅁ= 라고 생각해두자)
 
다만 아쉬웠던 점이라면
각각의 경기들이 치열한 공방전으로 전개된 것이 아닌,
철저하게 정명훈이 짜온 프레임의 전개로 인해 승패가
결정되었다는 점이 아닐까 싶다.
 
실제로 다섯경기 모두 일방적인 전개에 원사이드한 결말.
시나리오가 완벽히 흘러간 1, 2경기와
타이밍상 어긋난 유닛의 조합으로 프레임이 깨진 3, 4, 5경기.
 
뭐 여튼 재미있었으니 그걸로 위안삼자.
 
post script) 경희대 앞 e스포츠센터는 정말-_-)=b
제대로 스덕 인증하고 왔다 ㄲㄲㄲ 손님이 우리 셋뿐이라니 ㅠㅠ
 
post script 2) 롯데의 손아섭 선수가 결승전을 관람중인 걸 보고
'역시 로이스터 식 자율야구-_-)=b' 했다.
바로 직전까지 개막전 풀타임을 뛰고 온 선수였는데;;;

by 김준희씨 | 2009/04/05 23:40 | 문화: 스포츠 | 트랙백 | 덧글(2)

3/31 diary

이번 한 주는 단 이틀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3/30
전날 걸린 코감기에 신음하며
퀴즈공부를 위해 6시 10분에 맞춰둔 알람을
무려 7시 55분까지 듣지 못하다.
그 와중에도 이번주 분량 RA 제출자료(타교)의
due가 6시임을 먼저 떠올려야하는 게 아쉽지만
난생 처음 접하는 과목의, 생전 처음 접하는 notation들은
역시 하루 잠시 본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Differential Geometry 1st Quiz, 대실패.
 
강의 종료 후 공동 RA중인 친구와 열심히 전화로
multiple variable regression에 대해 떠들어 보는데,
감기때문에 귀도 막힌건지 제대로 들릴 리가 있나.
떠맡기고 대충 제출. 책임 회피의 온상 김준희씨.
 
모처럼 과외를 일찍 출발했다. 조금이나마 느껴보고 싶어였을까,
여유.
 
잘나가던 1호선이 정차하더니 5분을 눈뜬 채 날려보낸다.
환승 전철을 눈앞에 두고 뛰어오는 뒷사람의 태클에 밀려
넘어진 채로 문이 닫히는 2호선을 떠나보낸다.
다음 전철은 10분 뒤.
환승 버스는 내게 시커먼 혓바닥을 내밀고 눈 앞에서 점멸.
다음 버스는 15분 뒤.
20분 일찍 출발해 정확히 7분 지각.
여유는 무슨.
 
3/31
느즈막한 시간에 헐레벌떡 스터디 장소를 향해 가다
문득 떠오른 것은 또다른 quiz, in crash course of Algebra.
미안한 마음을 남기고 조금 일찍 스터디 장소를 떠나고.
수업을 들어갔더니 정작 기다리던 건 quiz가 아닌, 발표.
이미 수학과 내에서 일정의 변경이 공지되어있었단 사실을
늦게서야 깨닫고,
마침 내 차례인 발표를 위해 칠판 앞에 서서
즉석에서 theorem하나를 증명할 수 밖에 없었다.
시간 끌지 않은 점에 만족.
 
발표 준비는 발표 클래스 안에서,
내일이 due인 probability theory 과제는 병원약학 시간에.
중첩된 의무에 축약되는 시간들.
이어서 들려오는 학생의 교습 연기 요청.
잠깐 맞이하게 된 여유에 반가워하기는 커녕
이어지는 보강으로 잡아먹힐 내 시간에의 미안함과,
일요일 합주를 위한 연습을 지금 해야겠단 강박감과,
목요일 있을 약속의 위태로움에 대한 걱정만이
머릿속 전체를 잠식해갈 뿐.
 
여유, 어쩌면 무척이나 그리운 단어.
 
나 자신만 바라보고 살던 20대 초반의 나는 느끼지 못했지만
재충전을 위해 여행을 가고
자기계발을 위해 독서를 하며 과외활동을 하고
목표와 희망을 위해 연구활동을 하고
관심분야를 끝없이 개척해 나가고
활발한 창작을 통해 자기애를 만족시키고
이런 것들을 모두 합하여
자신만을 위해 오롯이 만들어진 시간을 사용하는 그네들이
점점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그에 반해 지금의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생계를 유지하는 것과
가족들의 힘이 되어드리는 것과
그나마의 시간을, 내 현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애쓰는 것.
생각하는 것. 그것 뿐.
 
언제부턴가, 생전 처음으로
막연한 존재에 대한 부러움을, 두려움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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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12시 40분의 사당역은 언제나 그렇듯
돌아갈 안식처를 위해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정장을 입고 서류가방을 든 채 바쁜 걸음을 재촉하는 이들.
술에 취해 빨개진 볼을 감싸며 위태롭게 서있는 이들.
막차를 놓친 죄로 24시간 버스를 대기할 수밖에 없는 이들.
 
그들도 어쩌면 몇몇은,
별거 아닌 삶에 투자해야하는 시간이 너무 많음을 자탄하며
오늘도 그렇게 routine한 생활을 반복하고 있진 않을까,
오늘의 나처럼.

by 김준희씨 | 2009/04/01 21:44 | 포유류 관련담화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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